성프란치스코에 관하여

총본부 현관 옆의 성 프란치스코 상
우리 수도회 이름 앞에 붙어 있는 “성프란치스코”에 대하여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프란치스코・베르날드는 1182년 이탈리아의 아씨시라는 도시의 유복한 상인의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며, 기사가 되는 것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성과 자질을 타고나, 동료 중에서도 지도자적 존재로 즐겁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도시 변두리에서 한센병 환자와 만났습니다. 처음에 그는 언제나처럼, 이 한센병 환자를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충동에 의해 타고 있던 말에서 내려, 그 환자를 바라보며 가까이 다가가 껴안았습니다.
그 때부터 그의 생애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의 가치관은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는 집을 나와 돈, 신분, 권력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려 했습니다. 복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복음대로 살았습니다.
산 다미아노의 십자가
산다미아노의 십자가는 12세기 움브리아 예술가가 비잔틴 양식의 십자가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한 성 요한 복음의 이야기는 다양한 캐릭터와 기호를 아이콘의 형태로 사용하여 호두 나무에 그려져 있습니다. 십자가의 높이는 약 74인치, 폭은 47인치, 두께는 약 5인치입니다. 그 의미는 성 프란시스코의 삶의 전환이 된 사건에서 비롯됩니다.
몇 년 후, 아씨시의 성 클라라와 그녀의 공동체 - 나중에 성 클라라회라고 불리게 되는 성 프란시스코의 삶의 방식을 본받은 여성들은 그녀의 수도원으로써 산 다미아노 교회를 받았습니다. 성 클라라는 41년 동안 산 다미아노의 십자가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수녀들이 아씨시의 새로운 수도원으로 옮겼을 때, 이 십자가도 가져왔습니다. 이 오리지널 산 다미아노 십자가는 여전히 아씨시의 성 클라라 대성당의 천장에 매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활동에 미치는 영향
그는 1226년에 하느님께 부름 받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 안에서
수도회 안에서 사람들의 마음 안에 살아 남아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0년 프란시스코를 '자연 환경 보호(생태)의 성인'으로 지정했습니다. 특히『평화를 구하는 기도』는 그의 삶 자체라고 여겨져,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평화를 구하는 기도
주여, 나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